섬유예술(fiber art)이라는 용어가 한국에서는 공예영역에서 확장되었다. 이유는 대학의 교육과정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을 떠나보면 순수미술의 영역에서 매체의 질료로써 인식되며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표현 방법으로 세계 유수 비엔날레나 아트페어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섬유예술의 독립된 교육과정을 마치면서 재료에 대한 수많은 학습과 경험을 통해 탐닉했을 것이다. 소위 설치미술에서 보이는 천(페브릭)의 활용과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특히 작가가 주로 사용해 왔던 <터프팅Tufting 기법>은 수직의 전통적 방법에서 현대화된 기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활 속에서 접하는 카펫, 러그 같은 제품을 만드는 기법이다.
기능으로 인식한 섬유들이 떡하니 전시장 벽에 설치되어 있고 흔히 볼 수 있는 무늬가 수놓아진 것이 아니라 글자가 새겨져 있다. 가만히 읽어보면 시대를 품었던 유명한 노랫말들 아닌가! 전설의 가수 이미자가 부른 “울어라, 열풍아!”, “동백 아가씨”. 송해의 “낙화유수”, 그리고 김연자의 “물방아 도는 내력”. 작가보다 더 많은 세월을 품은 노래들이다. 어떤 연유로 소환했을까?
정해강은 이곳 의성에서의 생경한 공기와 바람 그리고 풍경들을 마주하며 걷거나 버스 차창에서 옛 시간들의 기억들로 돌아간다. 소싯적 할머니 무릎 베게 하고 듣던 노랫말들이다. 읽혀지는 가사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선다. 한땀 한땀 새기면서 외할머니와의 시간을 끌어오고 있다. 시간의 기억과 추억은 누구나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한다. 정해강은 외할머니와의 시간을 섬세하게 하나씩 색을 배제시킨 채 지금의 시간으로 세상과 마주한다. 지금은 같은 시공간에 없지만, 내친김에 손자의 취향까지 내보인다. 오마이걸, 레드벨벳 등 그리 무겁지 않은 흥얼거림들을 같은 벽에 나란히 걸어 놓고 있으며 노래, 바람, 햇살과 함께한 시간까지 이번 전시에 나타낸다. 차가운 벽에 따뜻한 질감의 섬유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재료의 매력이다.
미술계에 텍스트의 힘과 인용은 오랜 세월 가능했고 최근 은유적 단어 혹은 작가의 재해석된 언어로 그림에 등장한다. 현대미술의 변화와 표현 방법이 사회적, 인류적 거시 담론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듯이 텍스트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해강의 텍스트 인용은 다른 결에서 읽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간의 기억을 유행가 가사로 차용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난 노래 혹은 음식들을 만나면 그때 그 시간 함께했던 사람, 사건들이 오버랩 된다. 문화의 궤적은 돌고 돌아 다시 현재의 시간에서 마주하는데 세대 간의 시선에 따라 기억, 레트로, 추억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다시 말해 작가는 이러한 삶 속에 예술의 역할이 기능하기를 원하는지 모르겠다. 사회적 이슈나 거대 담론의 메시지를 담은 개념이 잔뜩 탑재된 미술보다 따뜻한 향기를 담아내는 것을 작가는 즐거워하고 있다. 순수미술과 공예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보다 마음 닿는 대로 작가가 즐거운 작업이었으면 그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작가의 유쾌한 태도와 대화에서 문득 든 생각이다. ■서상호(오픈스페이스 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