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서 실존적 고민은 언제나 해결되지 못하는 숙제이자 끊임없이 추구되는 가치다. 정해강은 자신의 삶을 인터넷의 밈이나 웹에서 선호되는 이미지, 대중음악의 가볍고 키치한 가사 등을 경유해 하나의 물질로 관객에게 제안한다. 그는 자신의 이십대를 중심으로 개인으로부터 세대로 확장되는 문제들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열정적인 사랑, 사소한 일상들과 갈등, 낭만적인 순간들을 포착해 시각적 결과물로 제작한다. 휘발되는 시간적 연속들은 그의 내면의 필터를 거쳐 물리적 공간에서 존재로 변환된다. 이번 ‘관천로 문화플랫폼 S1472’에서 열린 정해강 개인전 〈X9〉는 흔한 미신같이 공유되는 ‘아홉수’에 관한 것이다. 한 시절의 끝에서 마무리된 것과 여전히 남아있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 진행되는 것과 끝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배회하는 그 시간을, 작가는 너무 무겁지 않게 보여주고 있다.
     “아홉수 정해강, 드릴 말씀 있습니다!”라는 호기로운 선언으로 시작하는 그의 작업은 대체로 시대를 구성하는 문화콘텐츠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작업들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텍스트다. 자신이 읽던 책의 표지, 「NOT COOL BUT WARM KIND OF THING」(2022) 시리즈와 「HUMMING」(2022) 시리즈의 터프팅(Tufting) 기법으로 수놓아져 있는 글귀들, 「모닝루틴」(2023)의 시리즈가 가진 인터넷 밈을 활용한 제목들은 그가 텍스트와 이미지를 중첩시킨 온라인 문화의 현시성을 전통적인 공예적 방법론과 결합해 재해석한 새로운 메시지를 다소 무겁지 않은 이미지 방식으로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소비문화에서 차용하는 디자인적 특성들은 언어적 재미와 다양한 이미지들 사이의 경쟁적 구성을 전제하는데, 이는 정해강의 작업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다. 대체로 사람들에게 특정한 시대나 사건,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 개별적 경험들을 촉발하는 촉진제로 기능하는 이러한 작업들은 개인으로부터 소속집단이나 공유세대를 아우르는 힘으로 확장된다. 특히 그는 걸그룹이나 이전 세대의 K-Pop의 노래가사나 앨범커버 이미지, 뮤직비디오의 시그니처 컬러를 과감하게 활용하면서 노래의 청각적 텍스트로 흩어지는 것들을 붙잡아 하나의 견고한 자리를 마련해준다. 이십대의 끝자락에서 전시를 구성한 작가는 음악의 함축적 의미들을 낭만적인 어조로 채우고자 한다. 이는 젊고 치기어린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강렬한 감정들로 작업 곳곳에 남아있다.
     그의 작업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인체를 적극적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그는 인체의 실루엣을 간소화하거나 반대로 손 등 부분의 실제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등 다양한 인물들을 제작한다. 「일어났어!」(2022)는 아침에 일어나 축 늘어진 모습과 함께 새로 업데이트된 인스타그램을 모두 확인한 스마트폰 화면이 보인다.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겠다는 의지와 책임감과는 다른 신체의 게으름, 그 사이에서 피어 오르는 잉여적 시간들의 모순들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초조함은 「메론소다크림드림」(2022)에서 곰인형이 겨누고 있는 칼에서 오히려 위협적이지 않은 살의로 드러나기도 하고, 「납작 엎드려서」(2022)의 관객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자책 혹은 자조적 태도로도 제시된다. 그의 실루엣들은 모두 누워있거나 무언가에 기대어있고, 독립적으로 제대로 서있지 못하는 (「Motivation」, 2022) 무력하고 긴장된 모습들로 나타난다. 「모닝루틴」(2023) 시리즈의 손들은 각기 제스처를 통해 수신호를 보내면서 둘 중 무언가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데, 이는 일종의 단순한 게임형식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실제 생활과 긴밀한 태도로 축적되는 일상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작업에서 젊은 예술가의 심리적 긴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믿었던 예술가 지망생들이 예술의 직업현장에 내던져지며 마주치게 되는, 마치 안개를 헤치며 걸어가야 하는 막막함 속에서 자신을 끝없이 회의하게 되는 과정은 화려한 이미지 속에 숨겨져 있는 대중문화의 단면과도 닮아있다. 「길리수트」(2022) 시리즈의 누운 인물은 크로마키 색상으로 이뤄진 누워있는 단순한 인체실루엣에 반짝이는 목걸이들이 인상적이다. 이 목걸이는 군번줄과 비슷한데 그곳에 적힌 단어 중 하나는 ‘talent’다. 이는 재능에 얽매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며, 마치 무엇이든 덧씌울 수 있는 크로마키 색은 앞으로 무한대로 변화할 수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정해강의 작업은 노력과 재능, 운과 성실함, 기회 등의 사이에서 전진하기 보다는 망설이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대적 실존에 한걸음 다가간다.
     그의 작업이 미디어 이미지와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반해 차용하는 매체는 다분히 수공예적이다. 섬유를 주로 다루는 그의 작업은 재료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했다. 미디어로부터 발생하는 이미지의 변화와 순간적 있음과 사라짐 사이에서 자신이 수집한 감정들을 수많은 시간동안 공들여 하나의 물체로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섬유가 갖는 재료적 까다로움을 마치 대화하듯 돌보는 작가의 수행은 세대적 감성을 하나의 가치 있는 것으로 전환해 생명력과 호소력을 획득하도록 만든다. 그는 이를 ‘interlacing’이라고 표현한다. 자신과 작업 사이에 존재하는 스스로의 행위와 묵직한 재료의 감각이 서로 얽히면서 작가와 작업이 하나의 실존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때론 직접적이고 이따금 혼돈스럽지만 굳건하게 무언가를 치열하게 쫓아간다. ‘때때로 쉬어도 좋다’, ‘너의 고민은 너만의 것이 아니다’ 같은 말들이 상황과 서사, 맥락과 감정들로 전시장 안에서 작업들과 함께 숨쉬고 있다.
     삶의 대부분은 지루하고 일부는 흥미롭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일부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며 살아간다. 숨기고 싶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함을 먼저 드러내고 타인의 삶을 묻는 친절함은 작가의 미소를 많이 닮았다. 더 아름답고 빛날 그의 세 번째 아홉수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천미림(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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